대통사지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공주는 남북으로 흐르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제민천변인 반죽동에서 당간지주와 함께 불상 조각이나 기왓조각, 석조 등으로 대통사의 존재에 대한 정황 증거가 나왔다. 하지만 건물지 같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대통사지는 베일에 싸인 유적으로 남아 있다. 고구려에서는 소수림왕 372년에 불교가 들어와서 최초로 지은 절이 성문사이다. 그러나 위치를 알 수 없다. 신라도 법흥왕(528) 때 최초의 절인 흥륜사가 세워지지만, 위치에 대해선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
백제 대통사지는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찰 터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반죽동 당간지주가 통일신라 양식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남북국시대까지는 그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대통사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으므로 나말여초를 전후하여 폐사된 것이 유력하다. 대통사의 정확한 위치는 현 당간지주 북쪽 대통교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통사 당간지주(반죽동당간지주 보물)
대통사 터 한 귀퉁이에 서 있는 당간지주 한 쌍 덕으로 이곳이 1,500년 전의 절터임을 겨우 알아볼 수 있다. 이 당간지주는 귀퉁이가 깨진 초석 위에 서 있으나 당간지주 자체는 거의 손상이 없이 매우 늠름하다. 옆면 테두리를 따라서 선을 돋을새김했고 깨진 기단부에 안상(眼象;코끼리 눈 무늬)이 조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는 간결한 인상이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큰절로서 명목을 유지했음도 짐작할 수 있다. 높이 329cm로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내면 외의 3면에 각 변을 따라 똑같은 너비로 테두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양 지주의 머리 부분은 내면 상단에서 외면으로 반쯤 평평하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와 외부로 깎여 1m쯤 사선을 이루었다. 양변의 가장자리는 그대로 조각 장식되어 있다. 당간을 고정하는 간구와 간공을 만들었다. 상부에서는 안쪽 측면 상단에 장방형 간구를 만들어 간을 설치하였으며 하부는 방형의 구멍을 만들어서 끼우게 되어 있다. 상부는 둥글게 모 죽임을 하였고 외곽선 중앙에 띠를 새겼다. 대좌 하단에는 안상 무늬가 보인다. 안쪽의 상부에 간구, 하부에는 간공이 보인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지주의 받침돌과 한쪽 기둥의 아랫부분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형태가 간결하다. 이 일대의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백제의 유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받침돌에 새겨진 안상을 조각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