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사리탑 (보물, 문화재 수난사)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불국사 비로전 영역에 가면 마당 한쪽에 ‘불국사사적기’에서 말하는 ‘광학부도’라는 아주 수려한 사리탑이 있는데 일본까지 갔다 온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보통 부도는 팔각원당형 구조인데 이 사리탑은 독특하게 지붕돌이 12각을 하고 있다. 지대석에는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 꽃을 조각하였고, 8각형의 하대석은 큼직한 연꽃 8잎으로 구성하고 장구 모양의 중대석에는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아랫면에 9잎의 연꽃을 조각하여 안에 원형을 그리고 윗면에는 연밥을 새겨놓았다. 또한 원통형 탑신에는 장식이 있는 기둥을 세워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각 면에는 마치 석굴암처럼 얕은 감실을 만들어 그 안에 사방불을 새겨 넣었다. 원래 사방불은 동쪽에 약사불, 서쪽에 아미타불, 남쪽에 석가여래, 북쪽에 미륵불을 모시는 게 일반적인데 이 탑은 특이하게 석가여래와 다보여래상과 범천, 제석천을 돋을새김하여 조각하였는데 이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는 법화경 교리를, 범천과 제석천은 도리천을 상징하는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와지붕을 본뜬 12각 지붕돌 아랫부분에는 연꽃을 조각하였으며 윗부분은 지붕돌에 붙여 조각한 노반 위에 띠 장식이 있는 원반형 복발을 올렸고 그 위는 없어졌다. 화려한 조형, 섬세한 조각 수법을 가지고 통일신라의 팔각원당형에서 탈피하려는 특이한 형태를 보면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한다.
슬픈 여행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나 이 아름다운 승탑은 1905년 일본으로 밀반출되어 도쿄 우에노 공원 근처 요릿집 정원에서 발견된다. 세끼노(동경제국대) 교수는 잡지사 요청으로 탑의 해설문을 기고하게 되었는데 몇 년 전 불국사에서 보았던 탑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후, 1909년 세끼노 교수는 다시 조선에 와서 조선 총독부에 이 승탑의 반환을 요청했으나 탑은 그 이후로 다른 데로 팔려 갔고,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래도 세끼노 교수는 끝까지 추적해서 20년 뒤 나가오라는 제약회사 사장 집 정원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사장이 총독부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28년 만인 1933년 7월 불국사로 반환되었다.
애잔한 마음
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충만했던 고고학자 세끼노 교수가 일본까지 반출된 문화재 반환을 위해 노력한 이유를 두 가지로 추정해 보았다. 하나는 학자적 양심으로 생각할 때 유물은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정과 다른 하나는 세끼노 교수를 포함한 지도층들은 조선이 일찍 해방되리라고 전혀 예상 못 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은 그들의 영토이고, 조선의 모든 것들은 조선 총독부 재산이었기에 제자리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라는 추정이었다. 어쨌든, 나라를 빼앗긴 그 시대, 국가지정문화재일 만큼 훌륭한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팔려 간 것도 억울한 데, 요릿집 앞마당에서, 개인 정원에서 그들의 눈요깃감으로 농락당하고 있었다는 것에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