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과 낙화암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낙화암을 감상하려면 백화정에서 고란사 쪽으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감상하는 것과 구드레나루에서 배를 타고 고란사로 가면서 감상하는 두 방법이 있는데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구드레나루에서 보는 백마강은 고구려에게 쫓겨 내려온 설움도 감당하기 힘든데 신라에게 패망한 아픔까지 삼키려는 듯 숨죽이며 흘러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그런 모습이 현대인에게는 목가적인 모습으로 보여서 금강(백마강)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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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사 바로 옆에 있는 조룡대. 뒤에 조룡대란 붉은 글씨는 송시열의 글씨를 집자해서 새긴 것이다. |
백마강의 유래는 백제를 정복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용을 낚았던 바위를 조룡대釣龍臺라 하면서 강의 이름이 백마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사적 기록으로는 이미 무령왕 시대 기록에 금강을 백강이라 표기했던 사실로 보면, 크다는 뜻의 말(馬)을 넣어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라는 의미로 백마강이라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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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화암에도 송시열의 글씨로 낙화암이라 새겨져 있는데 이것도 1929년 부여 군수 홍한표가 백화정을 건립할 때 송시열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겼다고 한다. 낙화암 꼭대기에 있는 백화정의 모습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
낙화암은 부소산에서 백마강 쪽으로 50m 정도 높이로 절벽을 이루며 서 있는 큰 바위를 말한다. 강물에 이르러 한 번 꺾인 단이 있는데 그곳 암벽에 ‘낙화암落花巖’이라고 쓴 송시열 글씨가 붉게 새겨져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가 멸망할 때 궁인들이 화를 피할 수 없게 되자 적군에는 죽지 않겠다며 부소산 북쪽 큰 바위에 올라 몸을 던져서 타사암墮死巖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후에 궁인을 꽃에 비유하여 이곳을 낙화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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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사 옛날 사진전에 있는 고란사와 낙화암 전경, 백화정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건만 현재는 나무에 가려 정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윗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