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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2/25  치학신문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④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무령왕릉 출토 유물


 이제부터는 무령왕릉 출토 부장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기념 특별전시’에 의하면 5,232점의 유물이 발굴되었고 그중에는 국보가 12건 17점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무령왕릉의 발굴이 고고학, 사학, 풍속학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보 유물을 중심으로 백제 유물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따라가 보자.


 무령왕 금제관식(金制冠飾 국보 제154호)


 무령왕릉 유물 중에 예술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을 꼽자면 무령왕의 금제관식일 것이다. 금제관식은 금으로 만든 관 꾸미개라고도 한다. 백제는 신라와는 달리 出(출)자 모양의 금관을 만든 것이 아니라 천으로 만든 모자의 좌우 측에 금제관식을 단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금관은 평소에 쓰고 있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무덤의 부장품으로 묻어둔 것으로 보는 설도 있으나 백제의 금제관식은 가벼운 편이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조’에 “왕은 자줏빛 큰 소매가 달린 도포를 입고 금 꽃으로 꾸민 검은 비단 모자(오라관烏羅冠)를 썼다”라는 기록이 있고 또 ‘구당서’(945년)에도 “검은 천으로 된 왕관에 금 꽃을 장식하고…”라고 묘사되고 있어 실제 무령왕이 착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금제관식(무령왕 523년 사망)보다 1세기 정도 앞서 만들어진 신라의 금관총 금관, 천마총 금관 등과 함께 한국의 고대 금제 관 꾸미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미려하고 호사스러운 형식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의 각종 금관과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의 금동 말안장 가리개 등의 최고 위세품들과 함께 한국 고대사에 있어 최상위 예술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무령왕 금제관식의 조형성


 이 금제관식은 왕의 널(관) 안쪽 머리 부근에서 2점이 포개진 채로 발견되었고, 순도 높은 금판(98~99%)으로 두드려 만든 것으로, 금판을 꽂이 쪽에서 위쪽으로 두드려 얇게 펴 늘리고, 이 금판을 오리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인동꽃 무늬(덩굴무늬)를 맞새김 하였다. 밑으로는 줄기에 2~3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무엇인가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좌우로 벌어진 줄기 중간에는 꽃무늬를 배치하였고 금빛 줄기가 길게 연장되면서 마치 불꽃(황금 화염)처럼 타오르면서 역동적이고 강한 상승감을 준다. 특히 맨 위 9잎의 커다란 꽃잎에서 다시 세 갈래의 새싹 줄기가 있어 마치 맨 위에 있는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반면 두 가닥은 하나는 길고 다른 것은 짧게 만들어 안정성과 조형미에 변화를 주고 있다. 왕비의 관 꾸미개와는 달리 좌우가 대칭이 아니고 앞면에 걸쳐 왕비 것에는 없는 구슬 모양 꾸미개(달개)를 금실로 꼬아서 달았다. 또 왕의 금제관식의 꽂이 부분은 하나의 금판으로 되어 있으나, 왕비의 꽂이는 청동으로 만들어 이어 붙였다. 크기는 각각 30.7cm, 29.2cm, 너비는 14cm, 13.6cm 무게는 좌측 131.5g, 우측 121.8g이다.


 영락(瓔珞)


 무령왕의 금제관식은 구멍을 뚫고 금실로 127개의 둥근 영락(달개, 지름이 5mm)을 달아 화려하게 만들었다. 불교에서는 보살의 수행에 따라 금, 은, 동, 유리, 수정 등으로 된 영락을 얻을 수 있고 이들은 각기 다른 기능과 위력을 지니며 중생을 위해 널리 쓰인다고 한다. 관 꾸미개에 영락을 단 것은 “무령왕이 불교에 귀의했다는 의미(우바새, 남자)이고 왕비의 관 꾸미개에는 영락이 없고 대신에 머리 근처에서 발견된 바리때(탁발 때 사용하는 공양 그릇)로 우바니(석가모니를 신봉하는 재가 신자, 여자)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풍속문화 학자인 구중회는 주장한다. 이런 조사가 보다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는데 졸속으로 유물을 수습하는 바람에 추가연구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사진 촬영하다가 보호유리를 살짝 건드렸을 때 흔들렸던 영락의 영롱함을 개인적으로 잊을 수가 없다.

 

 

역동적인 화염무늬, 영락의 영롱함, 하단에 두 가지를 늘어뜨려 조형성과 안정감을 준 예술적 감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만 국립공주박물관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진을 찍기에 조명이 걸림돌이 된다는 점(가운데 필자의 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과 하단의 중심줄기를 구부려 놓아 모자에 부착시키는 구멍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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