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금귀걸이(금제이식金製耳飾 국보 제156호)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귀걸이
귀걸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였다. 선사시대 귀걸이는 짐승의 이빨이나 뿔, 기괴한 돌 등으로 만든 정신적 예방을 바탕에 둔 문화로 시작된다. 고대의 귀걸이는 몸 자체를 아름답게 꾸미는 기능보다 주술적 요소가 있었다.
그래서 꾸준히 발전해 오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화려해지면서 특히 평균 수명이 짧았던 전통 사회에서 남녀 어린이들은 건강과 장수를 위해 자연스럽게 착용하게 된다. 세종도 금지령을 내렸지만, 선조가 오랑캐 풍속이라고 젊은 사내들의 귀걸이 풍속을 단속하면서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무령왕 금귀걸이
무령왕 내외의 금귀걸이는 총 5쌍(왕 1쌍, 왕비 4쌍)이 발굴되었다. 왕의 귀걸이는 왕의 관꾸미개 아래에 위치하며 각각 13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발견되었다. 귀걸이는 중심고리(주환)와 노는 고리(유환), 연결 금구, 중간 장식, 끝장식(수식)으로 구성되는데 하나의 중심고리에는 두 줄의 드림장식이 매달려 있다. 짧은 드림장식에는 중간 장식으로 원통형 장식이 연결되고, 그 아래에 크고 작은 하트 모양 꾸미개 3개가 달려 있다. 이 장식은 무늬가 없어 간소하지만, 앞뒷면에 타원형의 작은 잎을 하나씩 붙여 변화를 주었다. 긴 드림장식에는 작은 고리를 연접시켜 만든 공 모양의 장식에 나뭇잎 모양 달개가 달려 있고 그 끝에는 누금으로 장식한 금 모자가 씌워진 곱은옥이 연결되어 매우 화려하다. 백제의 귀걸이 중 최고의 예술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되며 특히 금색과 곡옥의 색조가 이룬 아름다움은 백제인의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으며 백제 전성기의 화려했던 귀걸이 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성분분석 결과 금 97.8~99.8%가 함유되어 있었다. 길이 8.5cm, 무게 54.7g(좌), 53.4g이다.
이 귀걸이는 한동안 ‘금모곡옥 및 심엽형수식 부이식’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금으로 만든 모자를 쓴 굽은 곡옥 및 심엽형(하트 모양)의 꾸미개를 붙인 귀걸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2006년에서야 쉽게 그냥‘귀걸이’로 정리하였다.
풍속문화로 본 무령왕 금귀걸이
풍속문화에서는 왕의 하트형(심엽형) 꾸미개는 여성의 생식기를, 왕비의 포환형의 실체는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다산과 안산을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또 귀에 거는 중심고리에서 두 갈래 장식이 늘어진 형태인데 한 갈래는 금판을 접은 빈 원통형 대롱이 3장의 하트형 드리개(수하식)에 박혀 있는 모양이다. 다른 갈래는 씨 없는 산치자 열매 같은 모습을 하고 끝부분은 모자를 쓴 푸른 곡옥이 달려 있다. 임금은 하트형으로 표현된 ‘여성 성기’를 달고 왕비의 귀걸이에는 탄환형으로 표현된 ‘남성 성기’를 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왕 귀걸이의 ‘남성(빈 금막대 형상)’은 ‘여성’에 삽입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특히 ‘여성’의 모습이 작은 이파리를 좌우로 덮어서 여성의 외음부를 형상화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을 ‘산치자 열매’로 표현했는데, 부부 귀걸이 모두 중간 꾸밈새를 모두 씨 없는 산치자 열매로 마무리하고 끝부분을 씨 맺힌 열매로 마무리했다. 왕의 귀걸이의 경우는 5매듭으로 씨 없는 미숙한 열매를 표현한 뒤 곡옥으로 마무리하였는데 고고학계에서는 굽은 옥은 ‘생명의 상징(태아의 모습)’으로 정리하고 있다. 강인한 생명력, 즉 후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보았다. 따라서 열매를 얻기 위한 과정에는 출산이란 위험한 과정을 거치기에 많은 열매 가운데 산치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유는 산치자 열매가 출산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할 출혈을 그치고(지혈) 열을 풀고(해열) 오줌을 잘 누게 하는데(이뇨) 효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풍속학적 학설이 맞든 안 맞든 다시 한번 눈길이 가는 것은, 무령왕 귀걸이가 현대적 감각으로도 아름다운 귀걸이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
| 무령왕 귀걸이는 하트형 꾸미개(심엽형 수식), 산치자 열매 꾸미개, 금모곡옥, 주환(중심고리), 유환(노는 고리) 등을 확인해 보면서 왕비의 귀걸이와 비교해서 관찰해 보면 매우 흥미롭기까지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