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나루의 전설과 웅신당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곰나루 금강변에는 아름다운 솔밭과 그 아래 넓고 흰 백사장이 펼쳐지며, 잔잔히 흐르는 금강 위로 강 건너 연미산이 엷게 비치는데, 이런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잃어버린 백제가 떠 오르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라에서는 이곳을 명승 제21호로 지정했다. 그런데 아련한 감정이 저절로 드는 이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슬픈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먼 옛날 연미산에 살던 암콤이 산에 나무하러 왔던 남정네를 납치하여 그를 남편으로 삼았다. 이 남정네는 금강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로서 곰이 물 마시러 갈 적마다 눈독을 들여 오던 터였다. 인간과 동물의 부부생활이 원만하게 영위될 수는 없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어부는 자식 둘이 생기자 동굴을 박차고 도망치고 만다. 남편의 탈출을 안 곰은 두 아이와 함께 필사적으로 뒤를 쫓았지만 놓치고 말았다. 연미산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흐르는 금강의 물살은 제법 빠르다. 다행히 배를 얻어타고 강을 건너는 남편을 향해 곰 아내는 제발 돌아와 달라고 울부짖지만, 인간 세상을 갈구했던 남편에게 처자의 절규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남편의 모습이 강나루 숲속으로 사라지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어미 곰은 두 아이를 양팔에 끼고 금강의 급류 속으로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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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나루 솔밭에는 고마나루 전설을 조각해 놓은 곰 가족상이 여러 개 있다. |
고마나루 전설은 너무 단순해서 소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다소 변주라면 암콤(여성)이 가해자이고 피해자가 남정네(남성)이라는 점에서 흔치 않은 이야기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더 슬프게 들릴 수 있다. 이런 사연이 서린 곳에서 1972년 백제 때 것으로, 추정되는 곰을 새긴 돌이 발견되어 공주 시민들은 이곳에 곰을 기리는 곰사당(공식 명칭은 웅신당)이란 사당을 짓고 발견된 곰보다 조금 큰 곰을 새로 새겨 모시고, 진품은 공주박물관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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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나루 숲속 고즈넉한 언덕에 낮은 돌담장, 아담한 사당, 마당에 세워진 웅신단비 등이 어우러진 웅신당은 백제 예술이 되살아난 것 같아 방문할 때마다 흡족한 마음을 선사 받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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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곰의 특징을 잘 잡은 비율과 단순화 시킨 조형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진품은 공주박물관 소장). |
어찌 되었든 웅진(熊津), 공주는 곰과의 인연은 뗄 수 없는 끈질긴 운명인 것 같다. 그리고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저의 금강변의 백제 여행은 웅진 백제를 떠나 부여 백제로 발길을 돌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