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석축 배수로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왕궁의 북서쪽 저지대에서 공방지를 발견한 발굴팀들은 힘을 얻어 남쪽으로 확대해 나간다. 그러다 동서 약 40m에 이르는 동서 석축 배수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 배수로는 크고 작은 화강암을 이용해 최대폭 170cm에 깊이 110cm의 규모로 정성스럽게 쌓은 흔적이 보이고, 흥미로운 것은 배수로 내부에서 보면 두 시기로 구분되는 층위가 뚜렷하고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 역시 두 시기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석축 배수로 바닥층에서는 백제 사비기의 기와 파편이나 토기 파편이, 배수로의 윗부분에서는 통일신라기 유물들만 수습되었다. 이는 왕궁리 형성 시기를 백제 사비기에서 시작되어 통일신라기에 까지 보수했다는 중요한 고고학적 단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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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 석축 배수로는 서쪽 궁장 밑으로 흘러 궁 밖으로 내보내는 시설이었다. 끝에는 궁장 밖으로 통하는 암거시설이 있다. |
동서 석축 배수로의 역할
동서 석축 배수로는 왕궁 내의 동쪽 높은 지대의 물을 서쪽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서쪽 끝은 서쪽 궁장 밑을 통해 궁 밖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2004년에 동서 석축 배수로와 서쪽 궁장의 조성 선후 관계를 조사해 보니, 백제 때 만든 석축 배수로가 서쪽 궁장의 배수시설인 암거시설(물을 대거나 빼기 위해 땅속이나 구조물 밑으로 낸 도랑)과 연결되어 외부로 물을 배출했음이 밝혀짐으로서 같은 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폭 3m 크기의 서벽에 있는 암거시설은 중간에 자연석을 쌓아 두 갈래로 수로를 만들었고 위쪽에는 덮개돌을 덮었다. 서벽 암거 시설은 서쪽 궁장과 거의 동시에 축조되어 동서 석축 배수로에 모인 물을 궁장 밖으로 흘러 나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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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로 끝, 담장 밑에 있는 암거시설은 서쪽 궁장 밑을 통과하게 설치되었는데 양쪽으로 장대석을 놓고 그것을 가운데에 돌을 쌓아 올려 장대석을 받치게 하여 양쪽으로 배수가 되게 하였는데 이 돌들이 백제시대에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
조성시기
그런데 조사 결과 석축 배수로 가장 밑바닥층 내부에서 나온 백제 기와 등이 출토된 것을 통해 보면 바닥 축성 연대가 백제 사비기 유물로 밝혀지면서, 지금까지 백제 멸망기나 통일신라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던 왕궁리유적 궁장의 처음 조성 시기를 7세기 전반인 백제 사비기까지로 소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성벽 수구 바닥석을 깐 층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주로 출토되어 왕궁리 왕성은 백제 말기에 축조되어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