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0.14 (수)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http://www.chihak.co.kr/news/20559
발행일: 2025/10/17  치학신문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5>
잊혀졌던 왕도, 익산

잊혀졌던 왕도, 익산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중 웅진, 사비에 이은 세 번째 지역인 익산은 나에게 매우 친숙한 곳이다. 첫 번째는 필자가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5년간 다니면서 눈에 익힌 곳이라 익산 구릉지에 내리는 따스한 햇살과 붉은 흙만큼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때는 매번 지나치는 길에 있던 유적지 표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 후 답사 여행을 다니면서 알게 된 ‘기준산성’(지금은 미륵산성)이 필자의 조상인 고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 왕이 쌓았다는 전설에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기는 듯한 마음으로 익산을 찾아가고 있다.


 익산을 찾아가는 길


 우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1980년도 중반 대학원을 다닐 때 왕복 2차선의 고속도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고속도로에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느껴본다. 익산 톨게이트를 지난 국도도 몰라보게 시원하게 넓어졌고 건물도 많이 들어섰지만, 그 뒤로 보이는 구릉지의 붉은 속살은 감출 수 없다. 예전에 대학원 다니던 목적과 지금의 답사 여행의 목적은 다르지만, 익산은 여전히 방문객의 인상에는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이다.


 풍요의 땅 금마


 필자가 지금 찾아가는 곳은, 익산에 속한 금마 땅인데, 이곳에 가면 왠지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구릉지 사이로 붉은 속살을 내비친 평야는 풍요를 상징하는 황토이고, 무엇이라도 품어 줄 수 있는 포근함과 넉넉함을 이루는 구릉들은 끝없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곳이 역사의 치열했던 각축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는 사실은 이런 풍요로움을 탈취하겠다는 인간이 불러온 탐욕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피비린내 나던 전쟁터 금마는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 밀집되어 있다. 미륵사터, 왕궁평 오층석탑과 왕궁터, 고도리 석인상, 쌍릉, 기준 산성, 사자사지, 연동리 석불좌상, 오금산성, 태봉사 삼존 석불 등 많은 유적들이 금마의 위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미완의 왕도 익산


 실제 금마는 몇 차례 왕도에 준하는 도시로 역사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져 버렸다. 마한의 월지국, 백제 무왕의 별궁, 고구려 유민인 안승의 보덕국, 후백제 견훤의 왕궁 등 어느 하나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했으나 특히 금마 땅 고도리 왕궁평 들판과 미륵산에는 백제가 남긴 미완의 왕도의 유적들이 폐허 속에 널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4대 고도, 익산


 금마가 있는 익산은 우리나라 4대 고도 중 하나이다.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과거 우리 민족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주, 부여, 공주, 익산 4개 지역을 고도로 지정하고 있다. 국립 익산박물관이 최근에(2020. 1월 10일 개관) 개관한 것은 4대 고도 중 익산만 국립 박물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도(왕도)의 조건


 고도는 백제 왕도, 신라 왕경, 사비 도성처럼 왕도, 왕경, 도성으로 불렸다. 국왕이 거주하는 왕도에는 왕궁이나 관아 등의 국가시설이 집중되며 주변 지역과 구별되는 정연한 도로망과 방어시설, 종교시설 등을 갖추고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익산은 백제 왕도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역사, 문화, 경관이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이처럼 익산이 고도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시설인 1) 통치 공간인 왕궁(왕궁리 유적), 2) 국가 통치 이념을 보여주는 사원(미륵사지 유적), 3) 왕실의 권위를 보장하는 사후공간인 능묘(쌍릉 유적), 4) 방어시설인 성곽(익산토성 유적) 등이 잘 보존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국가 기본 시설 중 -

통치시설인 왕궁터가 있는 왕궁리 유적

통치 이념을 보여주는 사원인 미륵사지 유적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는 사후공간인 왕릉인 쌍릉

방어시설인 익산토성 위에서 보이는 왕궁평 모습

 


관련기사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4>  치학신문 (09.2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3>  치학신문 (09.1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2>  치학신문 (08.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1>  치학신문 (08.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0>  치학신문 (07.2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9>  치학신문 (07.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8>  치학신문 (06.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7>  치학신문 (06.13)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6>  치학신문 (05.30)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5>  치학신문 (05.1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4>  치학신문 (05.0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3>  치학신문 (04.17)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2>  치학신문 (03.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1>  치학신문 (03.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70>  치학신문 (02.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9>  치학신문 (02.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8>  치학신문 (01.2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7>  치학신문 (12.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6>  치학신문 (12.13)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5>  치학신문 (11.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4>  치학신문 (11.1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3>  치학신문 (10.13)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2>  치학신문 (09.27)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1>  치학신문 (09.1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60>  치학신문 (08.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9>  치학신문 (08.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8 >  치학신문 (07.2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7>  치학신문 (07.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6>  치학신문 (06.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5>  치학신문 (06.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4>  치학신문 (05.30)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3>  치학신문 (05.1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2>  치학신문 (05.0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51>  치학신문 (04.1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㊿  치학신문 (03.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㊾  치학신문 (03.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㊽  치학신문 (02.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㊼  치학신문 (02.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㊻  치학신문 (01.2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㊺  치학신문 (12.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㊹  치학신문 (12.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㊸  치학신문 (11.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㊷  치학신문 (11.1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㊶  치학신문 (10.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㊵  치학신문 (09.23)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39>  치학신문 (09.0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㊳  치학신문 (08.2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㊲  치학신문 (08.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㊱  치학신문 (07.2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㉟  치학신문 (07.1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34>  치학신문 (06.23)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㉝  치학신문 (06.0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㉜  치학신문 (05.2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㉛  치학신문 (05.10)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㉚  치학신문 (04.27)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㉙  치학신문 (04.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㉘  치학신문 (03.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27>  치학신문 (03.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㉖  치학신문 (02.2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25>  치학신문 (02.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㉔  치학신문 (01.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㉓  치학신문 (12.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㉒  치학신문 (12.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㉑  치학신문 (11.2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⑳  치학신문 (11.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⑲  치학신문 (10.0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⑱  치학신문 (09.23)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⑰  치학신문 (09.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⑯  치학신문 (08.2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⑮  치학신문 (08.1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⑭  치학신문 (07.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⑬  치학신문 (07.1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⑫  치학신문 (07.0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⑪  치학신문 (06.17)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⑩  치학신문 (06.0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  치학신문 (05.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⑧  치학신문 (04.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⑦  치학신문 (04.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⑥  치학신문 (03.2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⑤  치학신문 (03.1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④  치학신문 (02.2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③  치학신문 (02.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②  치학신문 (01.27)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①  치학신문 (01.1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6>  치학신문 (11.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8>  치학신문 (12.13)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9>  치학신문 (12.3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0>  치학신문 (01.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1>  치학신문 (01.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2>  치학신문 (02.1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3>  치학신문 (02.2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4>  치학신문 (03.13)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5>  치학신문 (03.2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6>  치학신문 (04.1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7>  치학신문 (04.30)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8>  치학신문 (05.14)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99>  치학신문 (05.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0>  치학신문 (06.12)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1>  치학신문 (06.26)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2>  치학신문 (07.1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3>  치학신문 (07.30)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4>  치학신문 (08.15)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5>  치학신문 (08.28)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6>  치학신문 (09.11)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7>  치학신문 (09.29)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108>  치학신문 (10.14)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오스템 배너
 
  l   신문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회사명 : 주식회사 치학신문  |  07225 서울시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18길 5
광고접수 : 02-2632-6858(대표)  |  편집국 : 02-2679-9389  |  출판국 : 02-2633-9389, 02-2679-6820  |  팩스 : 02-2671-9389
제호 : 치학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6464  |  등록일 : 1987년 08월 07일
명예회장 : 임채균, 이재윤  |  회장 : 김홍기  |  발행인 : 장백용  |  편집인 : 심영섭
치학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치학신문은 신문윤리강령 및 주간신문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7 치학신문. All rights reserved. chihak@daum.net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