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적인 대형 화장실의 발견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왕궁리유적이 백제 사비기에 처음 축조된 것이라는 추정은 서북쪽 일대의 다른 유구나 출토 유물을 통해서도 보완되었다. 공방지 동서 석축 배수로 발견 후 10여m 남쪽에서 확인된 3기의 대형 화장실이 그를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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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 석축 배수로 남쪽에서 발견된 대형 화장실. 위에 화장실을 재현한 건물 두 채와 대형 유리로 덮어놓은 대형 화장실로 모두 3채가 발견되었다. |
화장실 터
백제는 600년대에 이미 위생적인 공중화장실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화장실 발견으로 입증되었다, 궁성 후반부에 지대가 낮은 북서편의 저지대 동서 방향의 배수로에서 남쪽으로 약 11m에서 화장실이 확인되었다. 화장실은 크기가 작아지는 3개의 대형 화장실이 서에서부터 동쪽으로 나란하게 놓여있는데 오수를 저장하였다가 긴 수로를 통과하면서 정화를 시켜 동서 석축 배수로로 갔다가 서쪽 벽 암거를 통하여 서쪽 궁궐 담장으로 빠져나가는 오늘날의 정화조와 같은 과학적 구조를 지닌 위생적인 화장실이 발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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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에 가로지르는 석축 배수로까지 3개의 화장실에서 11m가량 긴 수로를 통해 정화된 물을 배수로를 통해 서쪽 궁장 밖으로 내보내는 위생적인 처리시설을 7C 초에 백제는 갖고 있었다.(국립익산박물관 자료) |
대형화장실 1
3기의 화장실 중 가장 크고 맨 서쪽에 있는 것이 대형 화장실 1인데,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구덩이를 깊게 판 후에 안쪽 벽면에 일정한 간격(1.8m)으로 나무 기둥을 박아 만들었다. 규모는 길이 10.8m 너비 1.8m 깊이 3.4m이고 내부에서 뒤처리용 나무막대를 비롯하여 건축 부재로 추정되는 목재품, 나무 방망이, 백제 짚신, 목제 칠기 뚜껑 등이 출토되었다.
대형화장실 2
대형 화장실이 동서로 3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데 가운데 화장실이 대형 화장실 2이다.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구덩이를 깊게 판 후에 안쪽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기둥을 박아 만들었다. 규모는 동서 길이 5.6m, 남북 너비 1.6- 2.1m, 깊이 2.00-2.35m이다. 나무 기둥으로 구획된 내부 공간의 규모는 정면 3칸 3.8m, 측면 1칸 0.8-0.9m이다. 서쪽벽 중앙의 바닥 면에서 90cm 위에서부터 북서쪽으로 길게 늘어진 S자 형태로 부드럽게 꺾인 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대형 화장실 2는 구덩이에 담긴 오수를 모았다가 수로를 거쳐 정화하여 궁궐 밖으로 빼내는 구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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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터에서 발굴된 뒤처리용 나무막대(국립익산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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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현한 화장실 모형, 오른쪽에 석축 배수로가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