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아리 나한상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국립부여박물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유물을 꼽으라고 하면, 백제금동대향로가 제일 먼저일 것이다. 그러나 부여박물관에서 다시 보고 싶어지는 유물은 하면, 나는 이 나한상이 떠오른다. 단지 흙으로 빚어 깨어진 소조상일 뿐인데, 인간의 번뇌를 잘 표현하고 있고, 그 고통의 무게를 같이 나눠 가지고 싶어질 정도로 애처롭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한(羅漢)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로 소승불교에서 수행의 최고 경지에 이른 성자를 의미하며, 대승불교에서는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구제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를 비롯한 16나한, 오백나한의 형태로 모시고 있다. 부여읍 구아리 절터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소조상은 투박한 안면의 주름과 찌푸린 눈, 반쯤 벌린 입 모양에서 세상일에 번민하는 인간적인 혹은 구도자의 고뇌하는 모습으로도 보이지만, 석가가 열반에 들었을 때 슬퍼하는 제자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백제 불상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데 이 나한상은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백제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조상을 보면서 예술품은 꼭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한상으로써는 드물게 강한 인상을 주는 이 유물을 보면서, 필자는 이 소조상은 깨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다시 말하면 깨지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이 깨진 나한상이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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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미소’라고 불리는 영묘사지 출토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신라의 미소’라고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를 만날 수 있다. 처음 보았을 때 조그만 크기와 깨진 모습에 실망했던 기억이 있으나, 웃는 모습은 경주의 얼굴이 되었고, 경주 톨게이트를 지나면 신라인의 얼굴로 내방객들을 처음으로 맞이한다. 그런데 백제의 나한상이나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얼굴 무늬 수막새에서는 하나 같이 백제인의 얼굴을 대표하기엔 너무 슬픈 표정의 유물만 남아 있다. 백제인들을 대표해서 내방객들을 맞이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혹시나 국가의 미래를 미리 알고 있다는 표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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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사지 출토 얼굴무늬 수막새(국립익산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