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발굴의 의미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이 대형 화장실은 국내 최초로 발견된 삼국시대 화장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일본의 고대 화장실에도 영향을 끼친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화장실 내부에서는 8엽의 연화문 수막새와 ‘진辰’ 자 등이 찍힌 문자기와를 비롯해 접시나 대접 등의 회백색 토기, 굴뚝으로 사용한 연통형 토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런 유물들은 백제 사비기의 특징적 유물이어서 화장실이 만들어진 시대가 7세기 초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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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리 화장실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국립 익산 박물관 자료) |
화장실 내부
화장실 내부에는 바닥에서 2m 높이까지 유기질을 포함한 진회색 점토의 뻘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유기물층의 가장 상층에서는 건축물의 부제로 추정되는 목제품이, 중간층에서는 짚신, 토기 편, 연화문 수막새와 문자기와 편 등이 출토되었고, 가장 바닥층에서는 밤껍질이나 콩류, 참외씨를 비롯한 씨앗류 등이 출토되었는데, 유기물층이 두껍게 퇴적된 것으로 보아 오랜 기간 사용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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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익산박물관에 전시된 화장실 단면도 |
화장실과 기생충
연구진들은 처음에 구덩이에서 유물들이 나오자, 이곳의 용도를 몰라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팀 중 일본에서 화장실 유적을 발굴했던 적이 있던 연구원의 제의로 토양을 채취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대형 화장실 구덩이 바닥층의 흙을 떠서 고려대학교 기생충학 교실에 시료를 분석한 결과, 사람 몸에만 기생하는 회충, 편충, 간흡충 그리고 어떤 종인지 명확하지 않은 기생 흡충류의 알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화장실 터로 확정했다. 이는 고고학에서는 기생충 흔적이 발견된 장소를 화장실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본 고대 왕궁이나 관청 관련 유적에서 왕궁리 유적과 비슷한 형태의 화장실이 발견된 바가 있었다.
토양분석
편충과 회충은 오염된 채소를 섭취했을 때 생기는 기생충이고 간흡충이나 감별이 불분명한 기생 흡충류는 강 주변에서 민물고기를 먹었던 사람들이 거주했을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었을 때 발견되는 조충란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육식을 거의 하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곳을 사용한 사람들은 왕족이나 귀족처럼 높은 신분이 아니라 공방에서 일하던 하층 사람들이고, 바로 옆에 있던 공방에서 일하던 장인들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런 연구 자료들이 발표되자 익산 고대사에 관한 연구 방향이 커다란 전환을 맞는다. 이후 왕궁리유적 발굴은 본격적으로 백제 사비시대 왕궁의 실상을 밝히는 방향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백제 왕궁의 내부 구조나 왕궁이 사원으로 바뀐 과정과 같은 주제들이 떠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