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리유적, 궁장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왕궁의 담장을 궁장이라고 한다. 왕궁리유적의 궁장은 동아시아에서 보존이 가장 잘된 왕궁의 담장이다. 이 담장의 발굴로 왕궁의 규모가 폭 3m의 기단으로 동서 약 240m, 남북 약 490m의 직사각형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국의 건축기술서인 ‘영조법식’에는 ‘담장 아래쪽의 폭은 높이의 1/2로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왕궁리유적 궁장의 아래 폭이 3m이기 때문에 높이는 6m에 달하고 여기에 기와지붕도 올렸다면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라진 돌담 윗부분의 구조는 판축설(흙다지기)과 석축설(돌쌓기)이 있는데 돌무더기가 발견되지 않아 판축설을 따라 박물관에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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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익산박물관 초입에 왕궁리유적 궁장을 재현해 놓은 모습. 발견된 석축 위로 판축기법(흙다지기)으로 담을 쌓았다. 담장 위에는 지붕도 있었고 담장 안팎으로 보도시설로 돌이 깔린 것이 확인되었다. (국립익산박물관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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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담장은 궁으로 들어가는 3개의 문 터가 발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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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 담장에는 1개의 문 터가 발견되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왕실 사찰인 제석사지 터가 발견되어 ‘관세음응험기’에 나오는 왕실 사원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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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40m에 달하는 북쪽 담장은 높은 지역인 왕궁의 후원지역과 낮은 지역인 공방지 쪽으로 이어지는데 한 개의 북쪽 문 터로 연결된 대형 수로를 건너는 다리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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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 담장에서는 동서로 가로지르는 궁 안의 수로가 담장 밑으로 빠져나가는 수로와 서문 터가 뚜렷하게 발견되었다. 궁장 안과 밖으로는 보도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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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터에서는 서문을 받쳤던 초석들과 배수시설 석축이 뚜렷하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