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물지와 동서 출입관련 건물지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대형 건물지
가장 중요한 건물지는 남벽 중앙 문지를 들어설 때 마주하게 되는 대형 전각 터이다. 탑의 아래쪽에 있는데 건물은 동서 31m, 남북 15m, 정면 7칸(31m), 측면 4칸(15m)의 크기로 발견된 건물지 중 가장 큰 것으로 추정한다. 경복궁의 근정전처럼 국가적 의례가 이루어지는 왕궁의 핵심 건물이었을 것이다. 남문과 같이 왕궁의 남북 중심축에 있다. 여기서 출토된 유물로는 연화문 수막새, ‘수부首府 명 기와’ 등 기와 편과 토기 편, 6세기 중엽 때 만들어진 중국 청자 파편 등이 있는데 이는 유적의 조성 시기나 성격을 연구할 때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중국 청자의 제작 연대가 550년대에 만든 것으로 밝혀져서 조성 시기를 더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고 ‘수부首府’라는 문자가 찍힌 문자기와가 나왔는데 수부는 으뜸인 고을 즉 수도나 왕도를 뜻한다. 이것은 무왕 대에 익산으로 천도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과 같은 도장으로 찍은 기와들이 관북리나 부소산성에서도 발견되어 이것만으로는 그 주장으로 천도를 100%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익산시에서는 이를 토대로 익산 천도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건물터에는 대형 건물의 기둥을 받치기 위한 독특한 건축 기법이 사용되었다. 즉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그 속에 점토를 단단히 다져 넣고 기둥을 세운 토심 구조를 말한다. 부여 관북리 백제 유적에서도 이와 규모와 건축 기법이 비슷한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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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층 석탑에서 내려다본 대형 건물터 |
석축 앞 건물터
왕궁리 유적지의 건물터는 대게 동서방향의 석축들 앞에 있다. 건물터는 사찰 이전의 왕궁 건물터와 사찰 건물터에서 45곳이 발견되었다. 대형건물지 서쪽 석축 앞 건물지에서는 땅을 파서 다지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는 토심구조, 나무와 흙으로 단을 올린 토축기단구조, 건물 바닥을 지면에서 띄워서 지은 굴립주 건물구조를 볼 수 있다. 이 세 유형의 건물터는 당시 건축기 술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동,서 출입관련 건물지
대형건물지를 가운데로 두고 동, 서로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이는 석축을 넘나들기 위한 출입시설로 추정한다. 동서 방향의 석축에서 튀어나와 양쪽으로 면을 맞춰 돌을 쌓아 맞췄는데 동쪽 건물은 동서 길이가 약 6m, 남북이 약 4m가량 남아있다. 오른쪽 건물터는 원형 주춧돌 3개와 기초시설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로 추정한다. 서쪽 건물도 석축을 넘나들기 위한 출입시설로 보이는데 동서 길이가 약 8m. 남북이 약 7m 높이 0.6m 정도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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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 건물지 뒤쪽 석축은 동서방향 석축1이다.(발굴 당시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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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 건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