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깃들어 있는 익산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익산 답사에 들어가기 전에 익산에 터를 잡으려던 국가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알아봄으로써 익산에 국가 성립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실제 익산(금마)에는 몇 차례에 걸쳐 왕도에 준하는 도시로 역사 속에 존재하다 사라진 적이 있었다. 마한의 월지국, 백제 무왕의 별궁, 고구려 유민인 안승의 보덕국, 후백제 견훤의 왕궁 등이 존재했다고 전해지는데, 어느 하나도 오래가지 못하고 왕궁평 들판 곳곳에 그 흔적만 남겨놓고 사라져 우리는 그들의 흔적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마한
익산(엄밀히 말하면 금마인데, 지금은 금마가 익산에 속해 있다.)은 마한의 중심지였다. 삼한시대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총수인 진왕은 월지국을 다스렸다고 한다. 마한 건국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한 가지는 B.C 108년 고조선이 위만에게 망하자,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기준이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을 쳐서 이기고 한왕이 되었다.(후한서)와 기준이 세운 나라가 바로 마한이다.(삼국유사)라는 이야기다. 아직 정리된 것은 없지만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은 ‘아방강여고’에서 ‘마한은 지금의 익산군으로 금마는 마한 전체 총 왕의 도읍이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금마가 마한의 중심지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마한은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온조 26년(AD 8년) 북쪽에서 일어난 백제에게 함락되며 역사와 이 지역에서 마한의 자취는 사라지게 된다.
백제와 익산의 미스터리
마한 이후 익산이 역사에 재등장하는 것은 백제 말 무왕에 의해서 야기된 익산 개발로 제기된 익산 천도설 때문이다. 최근 사학자들이 백제사에 흥미를 갖는 분야 중에는 미륵사지 서석탑(2009년)에서 발견된 유물들로 인한 서동 설화와 미륵사지 창건 설화의 재해석, 제석사지와 관련된 ‘관세음응험기’(1970년)에 나오는 무왕의 익산 천도설, 쌍릉의 주인 찾기 등이 있는데 이런 사학계에 많은 역사적 미스터리를 제공해 주는 지역이 바로 익산이다.
보덕국
또 한 가지는 백제와 고구려 멸망 이후 유민들의 저항이 일어나는데, 고구려 유민 검모잠이 당나라에 저항했으나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황해도 재령로 근거지를 옮기고 신라에 투항해 덕적도에 있던 고구려 왕족 안승을 왕으로 삼고 신라의 원조하에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불화로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다시 망명하자 신라는 670년 그를 백제에 남아있던 당군과 부여융의 백제군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금마저에 머물게 하고 고구려의 왕으로 봉했다. 671년에는 당군 5,000여 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고 사비성을 함락하여 백제 지역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신라는 고구려의 정치제도나 부제 사용을 그대로 허용하고 안승을 보덕국 왕에 봉하고 680년에는 문무왕의 조카와 결혼을 시켰다. 683년에는 안승을 경주로 이주시켜 벼슬을 주고 김씨 성도 주었다. 보덕국으로 금마지역을 위탁 통치하려 했으나 684년 안승이 죽자, 장군 대문이 모반을 꾀하는 일이 일어나자 이에 신라는 재발을 방지하고자 그들을 남쪽으로 옮기고 보덕국을 없애버렸다. 보덕국은 현 교육과정 한국사에는 나오지 않는 미약한 나라였다. 신라가 고구려 유민으로 백제 유민과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잠시 세운 나라였다. 보덕국의 흔적은 익산 토성부근에서 발견되고 있다.
견훤의 금마
세월은 또다시 흘러 통일신라 말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혜성처럼 나타난 후백제 견훤은 민심을 얻고 성장하여 900년 완산주에 이르러 후백제를 세운다. “후백제는 금마산에서 개국하였다.”라는 견훤의 건립 이념에는 후백제 건국의 정통성을 마한과 백제에 두고 일통삼한(삼한이 다시 모였다는 것)의 정신적, 역사적 토대를 결국 익산(금마)에서 백제를 찾으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익산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세력이 왕도로 점찍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라는 사실에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런 진실을 찾아 떠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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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익산 톨게이트를 지나 익산으로 진입하는 초입에는 익산시에서 새로 설치한 조형물에서 ‘백제 왕도’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