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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12/13  치학신문
금강이 품은 백제 유적 <88>
무왕의 서동설화

무왕의 서동설화

 

 


 기 태 석


 대전·기태석치과 원장

 

 

 

 

 

 

 

 익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모든 것이 무왕으로 귀결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건국 군주가 아니면서도 무왕처럼 설화를 남긴 군주도 드물다. 보통의 건국신화나 설화의 경우 그냥 이야기로 치부하고 넘어가고 있으나 무왕의 얽힌 설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면서 설화의 일부가 사실로 입증되었고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고자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 서동설화와 미륵사지 창건설화는 익산 백제의 미스터리를 이해하는 데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서동설화
 우선 그의 탄생과 신라와의 국제적 러브스토리를 낳은 서동설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 내용을 믿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사실로 밝혀진 것도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무왕은 금마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금마를 배경으로 왕이 되었으니, 금마는 백제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삼국유사의 백제 무왕(백제 제30대 왕, 재위 600~641년) 조에 보면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어머니는 과부가 되어 서울(부여 또는 금마) 남쪽 못가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그녀는 못의 용(지룡池龍)과 성관계를 맺어 장을 낳았다. 아이 때 이름은 서동이다. 그는 재기와 도량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또 그는 마를 캐어 팔아서 생업을 삼았음으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서동薯童(마를 캐는 아이)이라 불렀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그 못이 익산 오금산 마룡지라고 했고, 용으로 묘사된 서동의 아비를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법왕(백제 29대 왕 재위 599-600)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법왕이 왕자 시절에 미륵산에 드나들면서 서동모와 정을 통하여 낳은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


 선화공주 등장
 이어서‘서동이 성장한 뒤 신라. 진평왕(579~632)의 셋째 공주 선화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라벌로 가서 마를 갖고 동네 아이들을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하나 짓고 아이들을 꼬여 부르게 하였는데 그 노래는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이를 밤에 몰래 안고 간다.”라고 하였다. 동요가 서라벌에 퍼져 대궐까지 알려지게 되니 신하들이 임금에게 강력히 주장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가게 하였다. 그래서 집에서 쫓겨난 선화공주는 어찌어찌 서동을 만나 정을 통해 부부가 되었고 금마에서 마를 캐며 어려운 생활을 하자 공주가 서라벌을 떠날 때 어머니에게 황금 한 말을 받은 것을 보여주자, 서동이 마를 캘 때 그런 황금을 많이 보았던 것이 생각났고 그래서 오금산의 금을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 신통력을 빌려 서라벌의 장인에게 하룻밤 사이에 보내니 진평왕이 서동을 좋아하게 되었고 편지로 자주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는데 이후 서동이 백성들의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라는 이야기인데 숨은 뜻만 음미하고 직접 무왕의 흔적들을 보면서 진위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서동설화의 해석
 우선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백제와 신라가 전쟁을 치르는 적대국인데 그것이 가능할까부터 의심한다. 또 과부의 아들이 어찌 적대국의 공주와 결혼했다는 이 전설을 황당한 얘기로 치부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당시 국제관계는 폐쇄성 관계가 아니었고, 적대국이어도 열려있는 개방성 관계였기에 관산성 전투 바로 전에도 신라 백제 간에 정치적 혼인도 실제 이루어졌던 분위기로 이해해야 하고 서동이 법왕의 서얼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 서얼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귀인의 자제라는 높은 신분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서동이 선화공주를 얻어 스스로 귀인임을 내세운 것은. 그의 뛰어난 정치력으로 해석될 사항이고 끝내는 인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탁월한 정권 창출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건국 군주가 아님에도 설화를 많이 생산해 낸 것은, 그만큼 왕권을 강화할 목적이 어디엔가 있지 않았을까에 주목하면서 그가 남긴 유적에 접근할 필요성을 느낀다.

 

 

서동설화에 다섯 개의 금덩이를 캤다는 이야기로 이름이 붙여진 오금산은 익산토성을 품고 왕궁평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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